조종사는 앞에서 무엇이 오고 있는지 육안으로 잘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날씨가 나쁜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떤 날씨 속에서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것은 레이다가 항로를 지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오른쪽 혹은 외쪽으로 치우친 비행을 하면 그에 따라 적절히 레이다가 경고를 해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똑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또 그 계획하신 각 단계를 우리에게 계시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해주고 계십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기꺼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출 애급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셨고, 그 백성들은 그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따랐는지를 보게 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대군이 사막을 횡단하게 되는데, 낮에는 찌는 듯이 덥고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광야를 40년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 극도의 더위와 추위 속에서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면 그 백성들은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 기적의 구름은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광야를 방황하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막을 덮어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온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구름은 행진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구름이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였고 구름이 멈추면 그들도 일제히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은 그들이 어느 곳에 장막을 치고 있는가를 분명히 나타내는 유일한 상징이었습니다.
출40: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예를 들어 이런 상황입니다. 구름이 멈추면 그들은 침구를 끌어 내리고 장막을 칩니다. 그러나 야영할 준비를 다 마치자마자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구름이 움직인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짐을 꾸려서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 후에 구름이 다시 멈춰섭니다. 그들은 “또 구름이 곧 움직일지 모르니 이번에는 짐을 풀지 말고 그냥 땅바닥에서 자자” 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침구도 깔지 않고 장막도 치지 않은 채 차가운 땅바닥 위에서 잠을 잡니다. 그러나 그날 밤 멈췄던 구름은 그 다음날도 움직이지 않고 그 주일 내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름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수단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은 그 인도를 따라야만 했습니다. 설령 누군가 구름이 움직여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따르지 아니하고 이곳에서 머물겠다.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사막의 열기 속에서 죽었거나 밤의 냉기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았지만 자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싫어했고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수단을 통해서 투덜거리기를 잘하고 노예근성을 지닌 백성들을 연단시키셔서 언젠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그 뜻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세우고 우리의 고집을 내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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